중소 지자체들이 마라톤대회를 개최하는 이유는 대개 비슷하다. ‘해당 지역을 널리 알리고, 외지인을 불러들여 지역경제를 도우며, 특산품 소비와 관광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축제나 기타 지역행사도 같은 기능을 하지만, 마라톤은 ‘수천 명을 한 장소에 운집시킬 수 있는 당일 행사’라는 점에서 차별된다. 비교적 저비용으로 인상적인 그림을 연출할 수 있으니 지자체 입장에선 너무 매력적인 아이템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너도나도 같은 목적으로 개최하는 중소 지자체 대회들은 이른바 마라톤 시장에서 순기능과 역기능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제대로 준비된 대회는 동호인 인구의 활성화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지만, 토대가 부실한 대회는 지역대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동호회의 지역대회 단체 참가를 되레 위축시킨다.
‘흥행하는 지방대회’의 요건은 러너들의 리뷰를 통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참가자들에게 분명한 메리트 한두 가지를 제시해줄 수 있으면 소위 흥행에 성공한다. 이를테면 ▲차별화된 코스 ▲특산물 기념품이나 할인장터 ▲지역축제와 연계 ▲리조트나 관광시설과 연계 ▲타 지역 단체참가자 우대 등이다. 일단 러너들 사이에서 교통비와 시간이 아깝지 않다고 인정받은 지방 대회들은 동호회 단위 참가나 가족단위 참가 비율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규모를 늘려나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타 지역 관광객 유입이라는 본래의 효과도 당연히 커진다.
반대로 ‘실패하는 지방대회’들은 참가자에게 분명한 메리트를 제시하지 못한 대회들이다. 물론 이유는 다양할 수 있다. ▲애초 접근성이 너무 나쁜 지역이거나 ▲연계할 만한 축제와 관광지가 빈약하거나 ▲내세울 만한 특산물조차 변변치 않은 등의 태생적 요건도 있을 것이다. 태풍, 폭우 구제역 등 천재지변에 해당하는 걸림돌 때문에 제대로 성장해보지 못하고 고사하는 대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불가항력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주최 측이 마라톤대회의 본질을 잊음으로써 엎어지는 대회들이 있다. 최근 몸살을 앓은 반기문마라톤이 대표적이다. 한때 충북을 대표하는 대규모 대회였으나 지난해 말 실시된 음성군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각종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뉴스가 쏟아졌다. 특정 업체를 밀어준 정황, 참가자 수가 역대 최저인데도 역대 최고 보조금 지급, 참가자수의 두 배에 달하는 기념품 구입 등 구체적인 의혹들이다.
사실 비리 의혹보다 눈에 띄는 것이 참가자 수의 변화다. 2013년 1만3022명이던 인원이 2014년 7658명(세월호 사고로 연기), 2015년 8853명, 2016년 3192명으로 급감한 것이다. 다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반기문 총장의 대선 출마설과 맞물려 정치행사 이미지가 부각된 점이 악재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애초에 현역 행정가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대회의 기획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참가자들 사이에선 ‘음성의 특산물이 반기문이냐’ ‘지나치게 우상화 하는 것 같아 거북하다’ ‘반기문 없는 반기문 대회를 왜 하느냐’ 등의 부정적 의견들이 있어왔다.
음성군은 이번 비리의혹 사건과는 별도로 올해 반기문마라톤의 명칭을 변경하기로 했다.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어 ‘반기문’을 빼겠다는 것이다. 음성군의회가 참여인원 저조와 보조금 유용 등을 문제 삼아 예산 대폭 삭감을 예고한 상태이므로 긴축 재정도 불가피해졌다. 대회의 상징과 재원을 모두 잃은 이 대회가 과연 올해 정상적으로 열릴 수 있을까? 반기문마라톤 주최 측은 이제야 가장 중요한 대회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됐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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